과거라는 피난처, 미래를 잃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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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라는 피난처, 미래를 잃은 사회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소설 『타임 셸터』. Photo by Henry Nam.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타임 셸터』와 동아시아의 기억 정치

🇬🇧 🇯🇵

한 사회가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게 될 때, 사람들은 어디로 향할까.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소설 『타임 셸터』는 이 질문에 대해 기묘하고도 섬뜩한 대답을 내놓는다.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뒤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것도 단순히 추억하는 정도가 아니라,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실제로 들어가 살고 싶어 한다.

소설의 중심에는 ‘과거 클리닉’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있다. 이곳은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위해 특정 시대의 방, 가구, 음악, 신문, 냄새, 분위기까지 재현한다.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과거는 치료의 공간이 된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잊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아직 기억할 수 있는 시간 속에서 잠시 안정을 찾는다.

그러나 소설은 곧 이 사적인 치료의 공간을 사회 전체의 정치적 은유로 확장한다. 개인이 기억을 잃는 것처럼, 사회도 기억을 잃는다. 개인이 과거 속에서 안식을 찾으려 하듯, 국가도 과거의 어느 시점을 이상화하기 시작한다. 결국 유럽의 여러 국가는 자신들이 돌아가고 싶은 ‘가장 좋은 시대’를 국민투표로 결정하려 한다.

『타임 셸터』는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불가리아 작가 고스포디노프와 번역가 앤절라 로델을 세계 문학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부커상 측은 이 작품을 기억과 향수의 유혹을 개인적·세계적 차원에서 다루는 독창적이고 전복적인 소설로 소개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힘은 설정의 독창성에만 있지 않다. 『타임 셸터』는 우리가 흔히 따뜻하고 무해한 감정으로 여기는 ‘향수’가 어떻게 정치적 위험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필요하다. 역사를 배우는 일도 필요하다. 문제는 과거가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도피의 장소가 될 때 시작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과거가 선택적으로 편집되고 미화되어 정치적 상품이 될 때, 기억은 더 이상 성찰이 아니라 무기가 된다.

이 소설이 유럽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유럽은 전쟁, 제국, 파시즘, 공산주의, 냉전, 통합과 분열의 기억이 겹겹이 쌓인 공간이다. 고스포디노프의 상상 속에서 유럽인들은 현재의 불안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고 각자 자신들의 ‘황금시대’를 찾아 나선다. 어떤 국가는 제국의 영광을, 어떤 국가는 전후 번영을, 어떤 국가는 사회주의 시절의 안정감을, 또 어떤 국가는 청춘의 문화적 활기를 그리워한다.

이 지점에서 『타임 셸터』는 단순한 유럽 소설을 넘어선다. 그것은 오늘날 거의 모든 사회가 공유하는 정치적 병리, 즉 “미래의 상실”에 관한 소설이 된다.

미래를 믿을 수 없을 때, 사회는 과거를 다시 부른다.
경제가 불안정할 때, 사람들은 안정적이었다고 믿는 시절을 떠올린다.
정체성이 흔들릴 때, 국가는 순수하고 강했던 과거를 상상한다.
정치가 무력해질 때, 지도자들은 “다시 돌아가자”는 언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유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중국에서도 비슷한 장면은 반복된다. 다만 각 사회가 그리워하는 과거의 이름이 다를 뿐이다.

미국의 경우 그것은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 속에 나타날 수 있다. 그 과거가 실제로 누구에게 위대했는지는 자주 묻히지만, 정치적 언어는 복잡한 현실보다 단순한 회귀의 감정을 선호한다. 일본에서는 전후 평화국가의 정체성과 제국의 기억, 경제대국 시절에 대한 향수가 서로 충돌한다. 한국에서는 압축성장의 시대, 산업화의 기억, 민주화의 기억, 냉전의 기억이 지금도 정치적 정체성을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동아시아는 특히 기억의 정치가 강하게 작동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의 근현대사는 식민지배, 전쟁, 분단, 냉전, 독재, 산업화, 민주화, 경제성장, 제국의 붕괴와 부활의 욕망이 뒤섞여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과거는 단순한 역사 교과서 속 시간이 아니다. 과거는 현재의 외교가 되고, 선거가 되고, 거리의 시위가 되고, 기념관과 교과서와 영화가 된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 갈등, 중국의 ‘굴욕의 세기’ 서사, 대만의 정체성 논쟁, 홍콩의 민주주의 기억, 한국 내부의 산업화와 민주화 기억의 충돌은 모두 『타임 셸터』가 던지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잊고 싶어 하는가. 우리는 어떤 시절을 아름답게 꾸며 다시 살고 싶어 하는가. 그리고 그 기억은 누구에게 유리한가.

『타임 셸터』가 흥미로운 이유는 향수를 단순히 비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소설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한다. 누구나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있다. 어린 시절의 방, 오래된 노래, 사라진 거리, 젊었던 부모, 더 단순했던 세계. 기억은 인간을 지탱한다. 개인에게 과거는 때로 마지막 남은 집이다.

하지만 국가가 같은 방식으로 과거를 그리워할 때,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개인의 추억은 슬프고 아름다울 수 있지만, 국가의 향수는 쉽게 폭력적이 된다. 국가가 “잃어버린 영광”을 말하기 시작할 때, 그 말 속에는 대개 배제와 적대의 논리가 숨어 있다. 누가 그 영광의 일부였고, 누가 아니었는가. 누구의 고통은 기억되고, 누구의 고통은 지워지는가.

동아시아에서 이 질문은 더욱 절실하다. 이 지역의 많은 국가는 아직도 20세기의 기억을 완전히 통과하지 못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의 기억은 끝나지 않았다. 식민지는 사라졌지만 식민지의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냉전은 역사책 속 단어가 되었지만, 한반도와 대만해협에서는 여전히 현재형의 질서로 남아 있다.

그래서 『타임 셸터』를 동아시아에서 읽는 일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말한다. 과거는 단지 보존해야 할 유산이 아니라, 계속해서 해석되고 경계되어야 할 힘이라고. 기억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지만, 동시에 공동체를 찢을 수도 있다고. 그리고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과거를 정치적 피난처로 삼게 된다고.

Littoral East가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방식도 이 질문에서 출발할 수 있다. 동아시아는 단지 경제성장과 기술, 도시와 소비문화의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기억이 끊임없이 재배치되는 해안의 문명권이다. 서울, 도쿄, 타이베이, 홍콩, 상하이는 모두 미래적인 도시처럼 보이지만, 그 표면 아래에는 식민지, 전쟁, 이주, 개발, 검열, 저항, 상실의 기억이 흐르고 있다.

우리가 사는 도시들은 미래를 향해 달리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매일 과거와 협상하며 존재한다. 재개발되는 동네, 사라지는 골목, 복원되는 궁궐, 새로 쓰이는 교과서, 기념되는 사건과 침묵되는 사건들. 도시의 표면은 현대적이지만, 그 안의 시간은 단선적이지 않다. 동아시아의 도시는 늘 여러 시대가 겹쳐 있는 장소다.

『타임 셸터』는 바로 그 겹쳐진 시간의 위험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방의 가구로, 노래의 멜로디로, 국가의 구호로, 선거의 언어로, 가족의 침묵으로 돌아온다. 문제는 우리가 그 과거를 어떻게 맞이하느냐다.

과거는 피난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곳에 너무 오래 머물면, 우리는 현재를 잃는다.
그리고 현재를 잃은 사회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

『타임 셸터』가 남기는 가장 중요한 경고는 여기에 있다.
기억은 필요하지만, 기억 속에서 살 수는 없다.
역사는 배워야 하지만, 역사의 방 안에 갇혀서는 안 된다.
한 사회가 정말로 성숙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이 아니라, 과거를 직시한 채 미래를 다시 상상하는 능력이다.

『타임 셸터』는 유럽에서 온 소설이지만, 그 질문은 동아시아의 해안에도 도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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