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는 하나의 축구 대륙인가
중동의 자본과 동아시아의 시장 사이에서, 새로운 챔피언스리그를 상상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고 있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보고 있다. 한 시즌 동안 이어진 긴 여정이 단 한 경기로 압축되는 밤이다.
이 한 경기를 보는 동안 사람들이 떠올린 것이 단지 두 팀의 실력만은 아닐 것이다. 아스널의 오랜 기다림, PSG가 자본을 쏟아부어 만들어 온 왕조의 서사. 한 경기 안에 수십 년의 이야기가 겹쳐 있다. 유럽 챔피언스리그가 특별한 이유는 단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뛰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축구를 통해 유럽이라는 공간을, 그리고 그 공간에 쌓인 기억을 다시 그리는 대회이기도 하다.
런던과 마드리드, 밀란과 뮌헨, 파리와 리스본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역사적으로 갈등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축구의 밤이 찾아오면 이 도시들은 하나의 서사 안으로 들어온다. 챔피언스리그는 유럽이 단일한 문화권이어서 성공한 대회가 아니다. 서로 다른 도시와 국가를 연결하는 무대를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었기 때문에 성공한 대회다.
아시아에도 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가 있다. 그러나 이 대회를 보며 유럽 챔피언스리그와 비슷한 종류의 소속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아시아는 지나치게 넓다. 서울에서 도쿄까지의 거리와 서울에서 리야드까지의 거리는 전혀 다르다. 이동 시간뿐 아니라 언어, 생활 리듬, 미디어 시장, 축구를 소비하는 방식도 다르다. 동아시아와 중동은 같은 대륙으로 분류되지만, 하나의 일상적인 문화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최근 아시아 축구의 중심축은 점차 서쪽으로 움직이는 듯하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은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유명 선수와 감독을 영입하고,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를 유치하고 있다. 개편된 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의 최종 토너먼트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되고 있다.
자본은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세계적 선수의 영입은 화제성을 만든다. 화제성은 다시 중계권과 팬덤으로 이어질 수 있다. 관심이 자본과 인프라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아시아 축구의 미래는 반드시 하나의 중심을 향해 움직여야 하는가.
중동 축구가 성장하는 것과 동아시아 축구가 자신만의 무대를 구축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시아가 하나의 대륙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게 넓은 지역을 단일한 축구 시장으로 묶어 두는 방식이 각 지역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도 있다. 자본을 따라가는 길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이, 그 길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래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호주를 연결하는 별도의 클럽 대항전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일본의 J리그, 한국의 K리그, 중국의 슈퍼리그, 호주의 A리그가 참가하고, 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의 주요 클럽이 함께 경쟁한다. 제도적 협의가 가능하다면 뉴질랜드의 클럽도 초청할 수 있다.
이 구상은 단순히 이동 거리를 줄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의 대회를 흥행시키려면 경기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라이벌 관계와 서사다.
한국과 일본의 클럽이 만나는 경기에는 이미 축적된 감정이 있다. 물론 그 감정은 양날의 칼이다. 역사적·정치적 갈등과 얽혀 있어 과열로 번질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긴장이야말로 무대를 뜨겁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중국의 대도시를 연고로 하는 클럽과, 서울, 요코하마, 오사카의 클럽이 맞붙는 장면도 충분한 관심을 끌 수 있다. 방콕, 자카르타, 하노이, 시드니의 클럽이 이 경쟁 구도에 들어오면 대회는 더욱 다층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동남아시아에는 이미 거대한 축구 열기가 존재하고, 일본의 J리그는 안정적인 운영과 탄탄한 관중 문화를 갖추고 있다.
한국의 K리그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다. 대표팀에 대한 관심에 비해 국내 프로리그의 흥행은 오랫동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역 대항전이 K리그에는 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내 라이벌만으로는 만들어 내기 어려운 서사가, 도쿄나 상하이의 클럽과 매년 부딪치는 무대 위에서는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울산과 요코하마, 서울과 상하이의 경기가 시즌의 분수령이 되는 순간이 반복되면, 그 열기는 다시 국내 리그로 흘러 들어온다. 한국 축구에 부족한 것은 인프라보다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동아시아만의 무대는 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중국은 가장 까다로운 변수다. 한때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던 슈퍼리그는 과열의 시기를 지나 연봉 상한과 지출 제한을 도입하며 안정화 단계로 들어섰다. 리그 자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 대대적인 승부조작·부패 수사로 다수 구단이 승점 삭감을 받는 등, 재정보다는 거버넌스와 신뢰의 문제가 더 큰 그늘로 남아 있다. 시장 규모만으로는 무시할 수 없지만, 그 시장이 언제 어떤 형태로 신뢰를 회복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따라서 중국의 참여 가능성은 열어 두되, 대회의 성패가 중국 시장의 회복 여부에 좌우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편이 현실적이다.
이 지역에는 유럽과 같은 축구 전통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통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경기와 기억을 통해 만들어진다.
매년 서울과 도쿄, 울산과 방콕, 상하이와 시드니의 클럽이 중요한 순간에 서로를 만난다면 새로운 라이벌 관계가 생겨날 것이다. 결승전을 어느 한 국가에 고정하지 않고 여러 도시가 돌아가며 개최한다면, 대회는 지역 전체의 축제가 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축구연맹을 만드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월드컵 출전권 배분, 기존 AFC와의 관계, 상업적 권리, 각국 협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당장 독립적인 대륙연맹을 설립하는 것은 현실성이 낮을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의 완전한 분리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틀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AFC 내부에는 이미 동아시아축구연맹과 아세안축구연맹 등 지역별 협력 기구가 존재한다. 이들이 공동으로 대회를 기획하고 호주까지 참여시키는 방식이라면, 기존 질서를 곧바로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독자적인 축구 시장을 시험해 볼 수 있다.
기존 AFC 체제 안에서 시작하되, 독립적인 브랜드와 중계권, 상금 구조를 갖춘 대회로 키워 나가는 것이다. 충분한 시장성과 팬덤을 확보한 뒤 다음 단계의 제도 개편을 논의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동아시아가 스스로를 하나의 축구 공간으로 상상하기 시작하는 일이다.
동아시아는 정치적으로 단일하지 않다. 역사적 기억도 복잡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축구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축구는 차이를 없애지 않는다. 대신 서로 다른 도시와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장면을 만든다.
유럽 챔피언스리그가 유럽의 모든 갈등을 해결한 것은 아니다. 다만 유럽의 도시들이 하나의 무대 위에서 경쟁하고, 서로를 의식하고, 때로는 존중하도록 만들었다.
동아시아에도 그런 밤이 필요하다.
서울과 도쿄, 상하이와 방콕, 자카르타와 시드니가 하나의 대진표 위에 놓이는 밤. 중동에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중심과 별개로, 이 지역의 도시와 팬들이 이미 가진 에너지로 또 하나의 중심을 만드는 밤.
아시아는 하나의 대륙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대륙이 반드시 하나의 중심만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