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음식 여행기
『1938 타이완 여행기』를 읽고 떠올린 동아시아 음식 이야기
여행을 앞두고 읽으면 곤란한 책이 있다.
양솽쯔의 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가 그렇다.
1938년, 일본의 식민지였던 타이완을 방문한 일본인 작가 아오야마 치즈코는 통역을 맡은 타이완 여성 왕첸허와 함께 섬 곳곳을 여행한다. 두 사람은 기차를 타고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하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먹는다. 국수와 도시락, 과일과 과자, 이름조차 낯선 향토 음식이 페이지마다 등장한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타이완 야시장 음식 사진을 찾아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음식은 여행의 분위기를 살리는 소품에 머물지 않는다. 무엇을 먹는지, 누가 주문하는지, 어떤 언어로 음식의 이름을 설명하는지에 따라 두 여성의 관계와 식민지 사회의 위계가 드러난다. 음식은 일상의 즐거움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의 흔적을 품은 기록이다.
책을 덮고 나니 한국의 음식이 떠올랐다.
한국과 타이완은 모두 일본의 식민지배를 경험했다. 지리적으로도 멀지 않다. 근대 이후 항구와 철도, 도시와 시장을 따라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동안 음식도 함께 이동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과 타이완의 식탁에는 어떤 흔적이 남아 있을까.
서울의 포장마차와 부산의 어묵집, 타이베이의 야시장을 나란히 떠올려보면, 서로 다른 도시에서 가끔 비슷한 냄새가 난다.
오뎅은 어묵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겨울철 길거리 음식을 이야기할 때 어묵은 빠지기 어렵다.
포장마차 앞에 서서 뜨거운 국물을 종이컵에 담아 마신다. 꼬치에 꽂힌 어묵을 간장에 찍어 먹는다. 누군가는 어묵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여전히 오뎅이라고 부른다. 일상에서는 두 단어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일본에서 오뎅은 조금 다른 음식이다.
일본의 오뎅은 무와 곤약, 달걀, 다시마, 생선살 가공품 등을 국물에 넣고 끓인 요리 전체를 가리킨다. 한국에서 흔히 오뎅이라고 부르는 생선살 가공품은 오뎅에 들어가는 여러 재료 가운데 하나다.
한국에서는 요리 전체를 가리키던 말이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의 이름처럼 굳어진 셈이다.
오뎅의 형태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 그 뿌리는 두부나 곤약에 된장을 발라 구워 먹던 덴가쿠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국물에 여러 재료를 넣고 끓이는 조림 형태가 널리 퍼졌다. 간사이 지역에서 이런 음식을 간토니 또는 간토다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간토에서 전해진 조림이라는 뜻이다.1
부산에서는 어묵이 다시 다른 삶을 얻었다.
개항 이후 부산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어묵 가게와 제조 시설이 들어섰다. 부평시장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어묵이 판매되었고, 1930년대에는 일본인이 세운 어묵 공장도 운영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인이 공장을 이어받거나 새롭게 설립하면서 부산 어묵의 기반이 만들어졌다.2
항구도시라는 조건도 중요했다. 생선을 구하기 쉬웠고, 피란민과 노동자가 몰려든 도시에서는 값싸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어묵은 부산의 생활 속에서 지역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타이완의 야시장으로 가면 이야기는 조금 더 흥미로워진다.
타이완에는 톈부라라는 음식이 있다. 한자로는 甜不辣라고 쓴다. 글자 그대로 읽으면 ‘달고 맵지 않다’는 뜻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본어 덴푸라의 소리를 옮긴 표현이다.
여기서 덴푸라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일본식 튀김과는 조금 다르다. 일본 간사이 지역에서는 생선살을 갈아 튀긴 음식을 덴푸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간토 지역의 사쓰마아게와 가까운 음식이다. 이 이름이 타이완으로 건너가 톈부라가 되었다.
타이완의 톈부라는 생선살 가공품을 익혀 달콤한 소스와 함께 먹는 야시장 음식으로 발전했다.
비슷한 음식이 부산에서는 뜨거운 국물에 담기고, 타이베이에서는 소스를 곁들인 접시 위에 오른다. 일본에서 건너온 이름도 한국과 타이완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다.
음식은 국경을 넘을 때 형태뿐 아니라 이름도 조금씩 바꾼다.
카레라이스의 긴 환승 노선

카레라이스의 이동 경로는 더 복잡하다.
출발지는 인도지만, 한국과 타이완에 도착하기까지는 여러 차례의 환승이 필요했다. 인도에서 영국으로, 영국 해군에서 일본 해군으로, 다시 일본의 가정과 식당을 거쳐 식민지 조선과 타이완으로 이동했다.
메이지 시대 일본 해군은 영국 해군의 식단을 참고해 카레를 받아들였다. 고기와 채소를 한꺼번에 넣고 조리할 수 있어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기에 적합한 음식이었다. 일본에서는 밀가루를 넣어 걸쭉하게 만들고, 빵 대신 밥과 함께 먹기 시작했다.3
그렇게 일본식 카레라이스가 만들어졌다.
이후 카레는 일본의 영향권을 따라 한국과 타이완에도 전해졌다.
한국에서 카레라이스는 오랫동안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이국적인 음식이었다. 학교 급식에도 나왔고, 집에서 한 번 만들면 다음 날까지 먹을 수 있었다. 돈가스와 함께 경양식집의 대표 메뉴로 자리 잡기도 했다.4
인도 음식이라고 부르기에는 맛이 순하고 걸쭉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일본 음식이라고 의식하며 먹지도 않았다.
타이완에서도 카레는 일본 통치기에 들어왔다. 특히 일본과 타이완을 연결하던 항구도시 지룽에서는 일본식 양식 문화가 지역 음식에 영향을 주었다. 이후 카레는 타이완의 재료와 입맛을 만나 조금씩 달라졌다.5
카레라이스 한 접시에는 생각보다 긴 이동 경로가 숨어 있다.
인도에서 출발해 영국 군함에 올랐고, 일본에서 밥을 만났다. 한국에서는 급식과 경양식의 기억이 되었고, 타이완에서는 항구도시의 음식 문화 속으로 스며들었다.
카레라이스는 여러 차례 환승했지만, 동아시아의 식탁에서 내릴 생각은 없어 보인다.
빙수는 계속 무언가를 올린다

빙수의 역사는 조금 더 시원하고 가볍게 읽힌다.
일본의 카키고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얼음을 곱게 갈고 시럽을 뿌린다. 팥이나 연유를 곁들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얼음 자체의 질감과 시원함을 즐기는 음식이다.6
타이완에서는 얼음 위에 올라가는 재료가 훨씬 다양해졌다.
물론 타이완에서도 얼음에 단맛을 더해 먹는 습관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다만 일본 통치기에 근대적인 제빙 기술과 얼음 소비문화가 확산되면서 차빙은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으로 발전했다.
초기에는 갈아낸 얼음에 바나나 향과 설탕물을 뿌리는 단순한 형태가 흔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의 농산물과 간식이 차례로 더해졌다.
팥과 녹두, 파인애플과 구아바, 절인 과일과 젤리가 얼음 위에 올라갔다. 펀위안이라 부르는 타피오카 경단도 자리를 잡았다. 이후 망고빙수처럼 타이완을 대표하는 디저트도 등장했다.7
한국의 빙수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팥과 떡을 올린 팥빙수에서 시작해 과일, 젤리, 시리얼, 아이스크림이 추가되었다. 최근에는 인절미, 치즈케이크, 녹차, 흑임자처럼 재료의 범위도 넓어졌다. 얼음을 곱게 갈아 만든 눈꽃빙수도 익숙한 메뉴가 되었다.8
일본의 카키고리가 비교적 정돈된 여름 간식이라면, 한국과 타이완의 빙수는 새로운 재료가 올라올 때마다 흔쾌히 자리를 내주는 음식에 가깝다.
이미 충분히 많이 올라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연유를 위한 자리는 대체로 남아 있다.
김밥은 자신만의 길을 갔다

김밥을 이야기할 때는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다.
김에 밥을 싸 먹는 문화는 한국에도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따라서 김밥을 단순히 일본의 노리마키에서 유래한 음식이라고만 설명하면 한국의 기존 식문화를 놓치게 된다.
다만 오늘날 익숙한 형태의 김밥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일본식 노리마키와 식민지기의 음식 문화가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후의 변화다.
한국의 김밥에서는 초밥의 식초 맛이 약해졌고, 참기름 향이 강해졌다. 달걀, 시금치, 당근, 단무지, 우엉이 김 위에 나란히 놓였다. 여기에 햄, 맛살, 참치, 치즈, 제육볶음처럼 시대와 취향에 따라 새로운 재료도 들어왔다.
김밥은 소풍날의 도시락이 되었고, 기차역과 분식집의 간편식이 되었으며, 바쁜 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한 끼가 되었다.
오늘날 김밥을 먹으면서 일본 음식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것은 역사가 지워졌다는 뜻이 아니다. 외부의 영향을 받은 음식이 지역의 생활 속으로 들어와 어떻게 달라지고 정착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노리마키와 닮은 점을 가지고 있지만, 김밥은 오래전에 자신만의 길로 접어들었다.
제국은 사라지고 도시락은 남았다

『1938 타이완 여행기』에서 음식은 철도와 함께 움직인다.
1930년대 타이완의 종관철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주인공들은 기차를 타고 도시를 이동하며 지역의 음식을 만난다. 철도는 사람과 물자를 옮겼고, 그 과정에서 취향과 조리법, 식재료와 음식 이름도 함께 이동했다.9
제국은 행정과 물류, 통치를 위해 철도를 놓았다. 그러나 철도 위에서 이동한 것은 사람과 상품만이 아니었다.
기차 안에서 먹는 도시락, 항구도시에서 판매되는 카레, 역 주변에서 발전한 간식도 철도와 함께 확산되었다.
일본의 에키벤, 한국의 기차역 도시락, 타이완의 철도 도시락은 서로 같지 않다. 그러나 작은 상자를 열고 이동하는 풍경을 바라보며 밥을 먹는 경험에는 공통점이 있다.
철도는 지역의 음식을 휴대 가능한 형태로 바꾸었다.
기차가 다음 역으로 이동하는 동안, 음식도 새로운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음식은 흔적을 남긴다
식민지배의 역사를 음식으로 이야기하는 일에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따뜻한 국물과 달콤한 디저트의 기억이 폭력적인 역사를 가볍게 보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이 남긴 철도와 공장, 식당과 조리법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지배와 차별의 역사가 희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상의 역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식민지배는 제도와 정치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이동 경로와 노동, 소비 방식과 식생활에도 영향을 남겼다. 그리고 사람들은 주어진 음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만은 않았다. 익숙한 재료를 더했고, 입맛에 맞지 않는 부분을 덜어냈으며, 때로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부산의 어묵은 일본의 오뎅과 같지 않다. 타이완의 톈부라는 일본의 덴푸라와 다르다. 한국의 김밥은 노리마키와 닮은 부분이 있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음식 문화를 만들었다. 타이완의 차빙도 일본 통치기의 제빙 기술과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지역의 과일과 재료를 만나 다른 여름 간식이 되었다.
역사의 흔적은 언제나 원형 그대로 남지 않는다.
『1938 타이완 여행기』를 읽고 타이완의 음식이 궁금해졌다. 타이완의 야시장을 찾아보다가 자연스럽게 부산의 어묵집과 서울의 분식집, 일본의 작은 오뎅 가게를 함께 떠올렸다.
동아시아의 역사는 반드시 거창한 장소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겨울밤 포장마차의 국물, 여름날 과일을 올린 빙수, 별생각 없이 집어 드는 김밥 한 줄에도 여러 도시와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